[IP유동화의 빛과 그림자] 한국 특허, 잠재력의 무덤인가? 활용 강국으로 부활할 골든타임인가?세계 4위 특허 강국의 역설, 저조한 특허 활용도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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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freepik © 특허뉴스 |
한국은 명실상부한 특허 강국이다. 2023년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기준 특허 출원 건수 세계 4위, 반도체, 배터리, AI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연간 1만 건 이상의 특허를 쏟아내며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 특허로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며,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정부 지원 아래 혁신의 불씨를 키워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빛나는 성과 뒤편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저조한 한국 특허 활용도가 충격적인 현실이다. 등록된 특허 중 대부분이 빛을 보지 못하고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특허청은 IP 창출-활용-보호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특허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용’ 단계와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유동화’ 단계는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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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뉴스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한국 특허 정책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저조한 특허 활용률과 유동화율을 극복하고 ‘특허 활용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안을 심층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세계 각국의 성공 사례를 분석하고, 한국 실정에 맞는 혁신적인 정책 방향을 제안하며, 사례를 통해 그 실현 가능성을 뒷받침해 본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특허의 잠재력을 깨울 ‘골든 타임’이다.
빛과 그림자... 세계가 인정하는 특허 강국, 냉혹한 활용도의 현실
한국의 특허 출원 건수는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특허청은 약 23만 2천 건의 특허 출원을 처리하며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 경쟁력은 독보적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미국 특허청(USPTO) 등록 특허 수 2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기술 리더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배터리 특허를 무기로 테슬라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역시 2차 전지 기술로 유럽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허청의 노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에 이어 바이오, 첨단로봇, 인공지능(AI) 등 초격차 기술에 대한 우선심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IP 창출 지원 사업’을 통해 중소기업의 특허 출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연간 5천 건 이상의 특허 등록을 이끌어냈다.
IP 금융 규모 또한 지난해 말 10조 원을 돌파하며 특허 기술 사업화의 자금 조달에 기여하고 있다. S사는 5G 통신 특허를 활용하여 글로벌 통신사들과의 계약을 통해 수조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L사는 배터리 재활용 기술 특허로 EU 그린딜 정책에 부응하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등 성공 사례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빛나는 성과 뒤에는 저조한 활용도라는 냉혹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2022년 등록된 약 15만 3천 건의 특허 중 극히 일부만이 실제 사업화로 이어졌다. 이는 추정치지만 미국(20%), 일본(15%), 유럽(12%)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활용률이며, 한국 특허 시스템이 양적 성장에 치우쳐 질적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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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A사는 혁신적인 AI 기반 이미지 인식 특허를 출원했지만, 사업화 자금 부족과 시장 판로 확보의 어려움으로 2년째 특허를 활용하지 못했다. 대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S사는 매년 1만 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하지만, 미활용 특허도 적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 특허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과의 기술 이전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특허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이는 혁신의 씨앗이 묻힌 무덤으로 전략할 뿐이다.
거래 시장 침체와 유동성 부재, “혁신 성장의 발목을 잡다”
특허 유동성, 즉 특허가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활용될 수 있는 능력은 한국 특허 정책의 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다. 특허 거래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금융기관은 특허를 담보로 한 대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IP 금융 규모가 10조 원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700만 중소기업 중 실제로 혜택을 본 기업은 극히 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배터리 기술 특허를 보유한 중소기업 B사는 대출을 신청했지만, 가치 평가에만 6개월이 소요되어 결국 자금 조달에 실패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특허 경매 플랫폼인 Ocean Tomo가 수억 달러 규모의 특허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으며, 중국은 상하이 특허 거래소에서 화웨이의 5G 특허를 수억 위안에 매각하는 등 활발한 시장 기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시장 기반 유동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특허가 진정한 자산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혁신은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특허청의 선순환 정책, 이상과 현실의 괴리
특허청은 IP 창출, 활용, 보호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특허 출원 비용을 지원하고, 기술 이전 로드쇼를 개최하며, 특허 침해 단속을 강화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는 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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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출원 지원 정책은 분명한 성과를 거두어 매년 수천 건의 새로운 특허 등록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등록된 특허가 실제 사업화나 기술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A사의 AI 알고리즘 특허는 기술적으로 우수했지만, 이를 제대로 평가할 전문가 부족과 시장 수요를 연결할 플랫폼 부재로 인해 활용되지 못했다. 반도체 특허를 보유한 D사 역시 대기업과의 협력 기회를 찾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겪었다. 이처럼 창출에 비해 활용이 극히 저조한 구조는 선순환의 첫 번째 고리부터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허청은 IP 금융 지원과 기술 이전을 통해 특허 활용을 촉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허 출원 세계 3위인 일본은 연간 1조 엔 규모의 IP 금융을 지원하며 중소기업 특허 활용률을 15%까지 끌어올린다는 각오다.
한국 역시 IP 금융 규모는 10조 원을 넘어섰지만, B사의 사례에서 보듯 금융기관의 소극적인 태도와 복잡한 절차로 인해 실제 기업들의 활용도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한국 금융기관의 특허 가치 평가 경험 부족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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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보호는 특허청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과도한 보호 중심 정책은 오히려 특허 활용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E사는 경쟁사와의 특허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막대한 소송 비용과 2년간의 법적 공백으로 인해 사업화가 지연되었다. 미국은 특허 풀과 같은 협력 모델을 통해 특허 분쟁을 줄이고 중소기업의 특허 활용을 촉진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DVD6C 특허 풀을 통해 유사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반면, 한국은 보호에 치중한 나머지 특허 공유나 거래를 촉진하는 제도가 미흡하여 선순환 구조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은 자체적인 R&D 역량과 자금력을 바탕으로 특허 활용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특허 기술을 사업화해 수십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특허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특허 활용률은 여전히 저조한 수준이다. F사는 특허청의 지원을 받아 반도체 특허를 등록했지만, 대기업과의 협력 없이 자금 부족으로 사업화에 실패했다. 이는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활용보다는 출원에 치중된 측면을 보여준다.
세계의 성공 사례에서 배우다... 시장의 힘과 민간 주도
미국은 민간 주도의 활발한 특허 거래 시장을 자랑한다. Intellectual Ventures와 같은 특허 전문 회사는 수많은 특허를 매입하여 풀을 조성하고, 이를 기업에 라이선싱하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구글은 모토로라 모빌리티의 특허를 대규모로 인수하여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강화하는 등 특허가 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Ocean Tomo와 같은 특허 경매 플랫폼은 수억 달러 규모의 특허 거래를 성사시키며 시장 유동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금융기관 역시 스타트업의 특허를 담보로 적극적인 대출을 제공하며 특허가 투자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 역시 특허 유동화를 위해 민간 특허 거래소 설립과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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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특허 풀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특허 유동성을 높이고 있다. DVD6C Licensing Group과 같이 주요 기업들이 특허를 공유하고 표준화를 추진하는 특허 풀 운영을 통해 중소기업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핵심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일본 특허청(JPO)의 J-PlatPat은 방대한 특허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여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있으며, INPIT는 컨설팅 지원과 세제 혜택 등을 통해 특허 이전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EU는 ‘유럽 단일 특허 제도’를 도입하여 특허 등록 비용과 절차를 간소화하고, ‘그린 특허’ 우선 심사 제도를 통해 친환경 기술 특허의 신속한 권리화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상하이 특허 거래소를 설립하여 특허 거래를 활성화하고, 지방 정부 차원에서 특허 담보 대출 지원 및 특허 출원 비용 보조 정책을 시행하며 특허 유동성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 특허 정책의 혁신 방안은... 잠자는 거인을 깨우기 위한 처방
한국 특허 정책의 근본적인 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최근 특허청은 기술사업화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키는 등 기술 사업화 생태계 구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동안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특허 자산을 효율적으로 유통하고 이를 통해 기업의 혁신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미래 지향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 기반 인프라 구축, IP 금융 혁신, 제도적 유연성 확보, 대-중소기업 협력 강화, 그리고 특허 활용 인식 개선이라는 다섯 가지 핵심 축을 중심으로 한국 특허 시스템의 체질 개선을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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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효율적인 특허 거래 시장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현재 운영 중인 국가지식재산거래플랫폼(IPMARKET)의 실적은 미미한 수준이다. 민간 주도의 ‘Korea IP Exchange(KIPEX)’ 설립을 통해 특허 유동화 및 통상실시권 거래를 활성화하여 기술 사업화를 통한 특허 활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더불어, AI 기반의 신속하고 정확한 가치 평가 시스템 활용을 통해 특허 평가 기간을 단축하고 시장 유동성을 제고해야 한다.
오는 5월 말, 세계 최초로 출범 예정인 STIP IP거래소는 특허 가치를 주식처럼 거래하는 새로운 시도로, 미활용 특허의 활용성을 높이고 중소기업의 사업화 자금 마련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STIP IP거래소는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정부 과제에 있어, 연구개발(R&D)만을 위한 정부과제 수행이 아닌 실용화(사업화)를 위한 연구개발에도 핵심적 역할이 기대된다. 기존 연구개발(R&D)를 통해 확보한 특허권만으로 STIP IP거래소를 통해 신규 R&D비용 및 연구인력 확충이 가능하다. 또한 중소·벤처기업, 개인발명가, 연구소(원) 등 자체 보유 특허를 통해 개발 및 운영비용 확보도 가능하다. 생성형 AI도 같은 의견이다. IP 유동화를 위해 IP거래소 설립을 해결방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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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혁신 성장을 위한 IP 금융 시스템의 실질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현재의 IP 금융 지원 제도는 기업의 혁신 활동을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보수적인 대출 관행과 복잡한 절차는 잠재력 있는 특허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해외 사례와 같이 기업 신용보다는 특허 기술의 잠재적 가치에 기반한 IP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대출 절차 간소화, 이자 일부 보전, IP 금융 전문가 양성 등 실질적인 금융 지원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셋째, 특허 활용 및 거래의 걸림돌이 되는 복잡한 법적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특허 거래 및 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시간과 비용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허 유동화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민간 중심의 특허 거래를 활성화하고, 민관이 함께하는 제도적 유연성 확보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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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협력 및 특허 공유 문화 조성이 중요하다. 기술 격차 해소와 동반 성장을 위해 ‘K-Battery Patent Pool’과 같은 특정 산업 분야의 특허 공유 플랫폼 구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한, 일본의 DVD6C와 INPIT 등 성공적인 특허 풀 운영 사례를 참고하여, ‘IP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 수요가 있는 중소기업과 관련 특허를 보유한 기업 간의 연결을 강화하여 기술 이전 및 공동 개발 등 다양한 협력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특허의 가치와 활용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특허를 단순히 권리 확보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업화 및 수익 창출을 도모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허 활용 워크숍 개최 및 R&D 투자 세액 공제 확대 등의 인센티브 제공을 고려하고, 성공적인 특허 활용 사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기업들의 인식 변화를 유도하고 특허 활용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지금은 잠자는 거인을 깨울 ‘골든 타임’
한국 특허 정책은 시장 중심의 효율적인 시스템 구축, 실질적인 금융 지원 확대, 제도적 유연성 확보, 상생 협력 촉진, 그리고 인식 개선이라는 다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정책들이 효과적으로 추진된다면, 한국은 잠재된 특허 자산을 혁신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전환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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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잠자는 거인을 깨울 골든 타임이다. 한국의 특허는 잠재력의 보고이지만, 낮은 활용도와 유동성 부재는 이 잠재력을 무덤으로 만들 수 있다. IP거래소 설립, IP 금융 확대, 제도 혁신, 특허 풀 운영, 인식 개선 등을 통해 2026년 활용도 10%, 유동화율 15%를 달성한다면, 미국과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5조 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와 민간이 손잡고 중소기업 특허 기술을 중심으로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특허를 깨워 ‘활용 강국’으로 도약할 마지막 기회다. 잠자는 거인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