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과 치매, 같은 뿌리 닮았다'... KAIST, 헌팅턴병 원인 단백질의 새 역할 첫 규명

염현철 기자 | 기사입력 2025/10/03 [19:25]

'희귀병과 치매, 같은 뿌리 닮았다'... KAIST, 헌팅턴병 원인 단백질의 새 역할 첫 규명

염현철 기자 | 입력 : 2025/10/03 [19:25]

▲ 헌팅틴 단백질의 세포골격 미세섬유 다발 형성 기작과 신경 세포 발달 영향 규명(그림 및 설명=KAIST)  © 특허뉴스

 

전 NBC 기자 찰스 서빈과 미국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의 공통점은 난치성 유전질환 ‘헌팅턴병’이다. 근육 조정 능력 상실과 인지 저하, 정신 증상을 동반하는 대표적 퇴행성 뇌질환인 헌팅턴병의 실마리가 한국·유럽 공동연구에서 풀렸다. KAIST 생명과학과 송지준 교수팀이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원(ISTA), 프랑스 소르본느대/파리 뇌연구원, 스위스 연방공대(EPFL)와 함께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과 세포생물학 기법으로 헌팅틴(HTT) 단백질의 ‘새 기능’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것이다.

 

연구팀은 HTT가 세포골격의 미세섬유(F-actin)에 직접 결합해 두 분자가 짝을 이루고, 약 20나노미터 간격으로 섬유들을 다발(bundle) 형태로 정렬·묶어 준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그동안 HTT는 소포 운반과 미세소관 기반 수송 등, 이미 구축된 세포골격을 ‘활용’하는 조력자 정도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결과는 HTT가 아예 세포골격을 ‘조직’하는 설계자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분자 수준에서 제시했다. 실제로 HTT가 결핍된 신경세포에서는 뉴런의 구조적 발달이 저해되는 현상이 관찰돼, HTT-주도 세포골격 다발이 신경망 성장과 유지에 필수적임을 뒷받침했다.

 

이 발견은 헌팅턴병의 발병 메커니즘을 새롭게 조명한다. 변형된 HTT가 단지 문제를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세포골격 배열이라는 근본 기능이 무너짐으로써 뉴런 연결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가설에 힘이 실린다. 세포골격 이상이 관여하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일부 근위축증 등 다른 퇴행성 질환 연구에도 공통의 분자 토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파급력은 더 크다. 제1 저자인 KAIST 김재성 박사과정생은 “베일에 싸였던 HTT의 작동 원리에 대한 관점을 전환했다”라고 말했다. 

 

KAIST 생명과학과 송지준 교수는 “이번 성과는 헌팅턴병 발병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뿐 아니라, 세포골격 관련 질환 연구에도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며, “세포 분열, 이동, 기계적 신호 전달 등 다양한 생명 현상에서 헌팅틴 단백질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번 논문은 KAIST 김재성 박사과정생과 김형주 박사(현 하버드대), 파리 뇌연구원의 레미 카펜티어와 마리아크리스티나 가피치 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9월 19일 자에 게재됐다. 희귀 유전병과 치매를 잇는 ‘세포골격’이라는 접점이 분자 현미경 아래에서 선명해지면서, 진단·치료 표적 발굴을 향한 다음 단계 연구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논문명은 Structure of the Huntingtin F-actin complex reveals its role in cytoskeleton organizati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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