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연재③] 떠돌던 로봇, 왜 현대차에서 살아났는가

실패한 기술이 아니라, 자리를 못 찾았던 IP였다

김주회 박사 | 기사입력 2026/03/12 [16:13]

[기고/연재③] 떠돌던 로봇, 왜 현대차에서 살아났는가

실패한 기술이 아니라, 자리를 못 찾았던 IP였다

김주회 박사 | 입력 : 2026/03/12 [16:13]

▲ IP전문교수 안전공학박사 김주회     ©특허뉴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오랫동안 ‘떠도는 기술’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로봇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DARPA 로봇대회의 상징이었고, 군과 학계, 산업계 모두가 인정한 기술력이었지만, 정작 이 로봇을 끝까지 책임질 주인은 없었다. 그래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구글로 갔다가, 소프트뱅크로 옮겨 다니며 기술 쇼케이스처럼 소비됐다.

 

기술은 늘 최고였지만, 사업은 늘 미완이었다. 구글에게 로봇은 검색과 광고를 대체할 사업이 아니었고, 소프트뱅크에게 로봇은 미래를 상징하는 이미지 자산에 가까웠다. 기술을 활용할 수는 있었지만, 기술이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 결과,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살아 있었지만, 늘 매각 대상이 됐다.

 

2020년, 현대자동차그룹이 약 1조2천억 원에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왜 이제 와서 로봇인가”, “자동차 회사가 로봇을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그러나 IP와 기술사업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인수는 늦은 선택이 아니라, 처음으로 맞는 선택에 가까웠다.

 

현대차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하나의 제품으로 보지 않았다. 로봇을 팔아서 수익을 내겠다는 발상도 아니었다. 대신 로봇을 자사의 산업 구조 안으로 끌어들였다. 공장 자동화, 물류, 스마트 제조, 그리고 미래 모빌리티까지, 이미 존재하는 사업 현장에 로봇 기술을 결합할 수 있는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 로봇은 독립적으로 살아남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존 산업에 기생하며 가치를 만드는 IP가 됐다.

 

이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더 이상 단독 사업성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로봇 한 대를 팔지 않아도, 로봇 기술이 생산성과 안전성을 높이면 그 자체로 가치가 됐다. 기술은 더 이상 시장을 설득하지 않아도 됐고, 기업 내부에서 쓰임을 증명하면 됐다. 떠돌던 로봇이 처음으로 자리를 찾은 순간이었다.

 

정책 환경도 중요했다. 현대차가 선택한 로봇의 무대는 사람으로 가득 찬 공공 공간이 아니었다. 안전 책임과 규제가 복잡한 소비자 시장도 아니었다. 폐쇄적이고 관리 가능한 산업 현장이었다. 이는 기술사업화에서 말하는 ‘초기 시장의 전략적 축소’다. 꿈은 잠시 접었지만, 사업은 현실이 됐다.

 

이 사례는 로봇 기술의 성공이 기술 자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술은 구글에 있을 때도 같았고, 소프트뱅크에 있을 때도 같았다. 달라진 것은 기술이 놓인 자리였다. IP가 떠돌던 시절에는 실패처럼 보였고, 산업 안으로 들어오자 성공이 됐다.

 

이 점에서 우리는 다시 우리 로봇을 떠올리게 된다. DARPA 로봇대회에서 NASA와 MIT를 이기고 세계 1위를 차지했던 우리 로봇은 기술적으로 보스턴다이내믹스보다 뒤처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로봇을 받아줄 산업을 준비하지 못했다. 기술은 국가의 성과로 남았고, 산업의 자산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실패한 로봇이 아니었다. 실패한 것은 로봇이 아니라, 로봇을 둘 자리를 설계하지 못한 전략이었다. 현대차 인수는 로봇 기술의 반전이 아니라, IP 전략의 정상화였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다음 세계 1위 기술을 또다시 창고에 둘 것인가, 아니면 산업 안으로 내려보낼 준비를 할 것인가. 기술 경쟁의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기술을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이 평생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설계했느냐에 달려 있다.

 

세계 1위를 했던 로봇이 창고에 있었던 시간만큼, 우리는 많은 기회를 잃었다. 더 이상 같은 장면을 반복할 수는 없다.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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