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데이터가 안보 자산이 됐다"... 美 생물보안법, 미중 패권경쟁의 새 전선은 ‘지식재산’

중국 바이오 기업 배제 넘어 글로벌 CDMO 공급망 재편 예고... 한국 바이오에는 기회와 IP 보안 과제 동시 부상

이성용 기자 | 기사입력 2026/04/27 [09:58]

"바이오 데이터가 안보 자산이 됐다"... 美 생물보안법, 미중 패권경쟁의 새 전선은 ‘지식재산’

중국 바이오 기업 배제 넘어 글로벌 CDMO 공급망 재편 예고... 한국 바이오에는 기회와 IP 보안 과제 동시 부상

이성용 기자 | 입력 : 2026/04/27 [09:58]

▲ 출처=생성형 AI 이미지  © 특허뉴스

 

미국이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겨냥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을 통해 바이오 기술과 데이터를 국가안보의 핵심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IP Focus 보고서 '美中 패권경쟁의 또 다른 戰場, 바이오'는 이번 법안이 단순한 조달 규제나 특정 기업 제재가 아니라, 유전자 데이터와 바이오 지식재산을 둘러싼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제도적 결과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25년 말 생물보안법을 포함한 2026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을 통과시키며 바이오 기술 안보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법은 미국에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특정 국가의 바이오 기업을 ‘우려 바이오 기업’으로 지정하고, 해당 기업이 제공하는 바이오 기술 장비와 서비스를 연방정부 자금이 투입되는 기관이나 수혜자가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핵심 배경은 유전자 데이터 유출 우려다. 보고서는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유전체 분석, 임상시험, 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미국인의 유전정보와 임상 데이터가 중국 정부에 악용될 수 있다는 미국 내 경계감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BGI, WuXi AppTec 등 중국 바이오 기업을 둘러싼 유전정보 공유 의혹과 지식재산권 무단 전송 의혹이 법안 추진을 가속화한 요인으로 제시됐다.

 

미국의 위기감은 중국이 바이오를 전략산업으로 집중 육성해 온 흐름과 맞물린다. 보고서는 미국 신흥생명공학 국가안보위원회(NSCEB)가 중국의 전략적 부상, 미국 내 바이오 정책 분산, 인력·인프라 격차, 동맹국 전략 연계 부족을 주요 위협으로 진단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중국이 20년 동안 바이오 분야를 전략적 우선순위로 삼아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했고, 미국이 신속히 대응하지 않으면 경쟁력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겼다.

 

생물보안법의 직접적인 규제 대상은 중국 CDMO·유전체 분석 기업이다. CDMO는 신약 개발과 생산 과정에서 세포주 개발, 세포은행 구축, 비임상·임상시험 샘플 생산, 품질시험, 대량 생산, 제조공정 최적화 등을 지원하는 핵심 산업이다. 보고서는 글로벌 CDMO 시장이 2024년 1,292억5천만 달러 규모였고, 2025년부터 2033년까지 연평균 7.8% 성장해 2034년 약 2,739억2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정리했다.

 

중국은 낮은 비용, 풍부한 인력, 완비된 원자재 공급망, 대규모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CDMO의 주요 생산 거점으로 부상했다. 특히 중국 제약시장의 확대와 유전자 치료·세포 치료 등 첨단 치료제의 등장으로 신약 개발과 제조의 분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중국 CDMO 기업의 역할도 커졌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의존 구조가 기술·데이터·공급망 안보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법적 차단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보고서는 이번 법안이 바이오 분야의 오랜 특허분쟁과도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일루미나(illumina)와 중국 BGI 계열사 간 차세대 유전체 시퀀싱 특허분쟁은 바이오 기술 주도권 경쟁의 상징적 사례로 제시됐다. 2022년 델라웨어 지방법원 배심원 평결에서 일루미나가 Complete Genomics의 특허를 고의 침해한 것으로 인정돼 약 3억3,380만 달러 손해배상 평결을 받은 사건은, 바이오 기술패권이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 우위에 있지 않다는 위기감을 키운 계기로 해석된다.

 

생물보안법은 이처럼 기술 경쟁, 데이터 안보, 특허분쟁, 공급망 재편이 결합된 법안이다. 보고서는 바이오 데이터가 이제 단순한 연구자료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할 ‘IP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전체, 후성유전체, 전사체, 단백질체, 대사체 등 멀티오믹 데이터는 신약 개발의 핵심 기반인 동시에,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식별·분석할 수 있는 민감 정보이기 때문이다.

 

법 시행 일정도 단계적으로 설계됐다. 생물보안법은 2025년 12월 18일 발효됐으며, 2026년 말까지 우려 대상 바이오 기업 명단이 공개되고, 이후 관리예산처(OMB)의 이행 지침과 연방조달규정(FAR) 개정을 거쳐 실제 계약 금지 효력이 발생할 예정이다. 1260H 명단에 오른 중국 군사기업은 FAR 개정 후 60일, 그 밖의 지정 기업은 90일 뒤부터 계약 제한 대상이 된다.

 

한국 바이오 기업에는 기회와 부담이 동시에 발생한다. 보고서는 미국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우방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프렌드 쇼어링’ 전략을 추진하면서, 한국 CDMO·CMO·CRO 기업에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력 확대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단순 생산능력뿐 아니라 지식재산 보호, 영업비밀 관리, 유전자 데이터 보안, 공급망 투명성까지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 연방 자금이 투입된 연구·개발·제조 프로젝트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은 생물보안법의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중국계 바이오 기업의 장비·서비스 활용 여부가 향후 점검 대상이 될 수 있다, 향후 미국 파트너와의 계약 과정에서 공급망 점검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글로벌 제약사와 연구기관들이 중국 대체 파트너를 찾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높은 IP 보호 수준과 데이터 보안 체계를 제시할 경우 시장 확대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보고서는 정부 차원의 대응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이오 기술은 이제 산업정책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됐다. 특허, 영업비밀, 데이터 보호, 국가안보, 공급망 정책이 결합된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바이오 데이터 보호 기준, 연구개발 보안 체계, 글로벌 계약 리스크 관리, 우려 기업·장비·서비스에 대한 점검 체계가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중 패권경쟁의 다음 전장은 반도체나 AI에 그치지 않는다. 신약 후보물질, 유전체 데이터, 제조공정, 임상 정보, CDMO 공급망까지 전략자산으로 인식되는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생물보안법은 그 변화를 제도적으로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한국 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생산 역량’만이 아니라 ‘신뢰 가능한 IP·데이터 보안 역량’을 새로운 경쟁력으로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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