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PN으로 우회해도 저작권 침해 아니다"... EU 최고법원, 온라인 공개·지역차단 기준 새로 썼다

안네 프랑크 일기 사건 판결... "최신 수준 지역차단 적용했다면 공중전달 성립 안 돼" 국제 저작권 분쟁 새 기준 제시

선우정 기자 | 기사입력 2026/07/29 [15:40]

"VPN으로 우회해도 저작권 침해 아니다"... EU 최고법원, 온라인 공개·지역차단 기준 새로 썼다

안네 프랑크 일기 사건 판결... "최신 수준 지역차단 적용했다면 공중전달 성립 안 돼" 국제 저작권 분쟁 새 기준 제시

선우정 기자 | 입력 : 2026/07/29 [15:40]

▲ 출처=생성형 AI 이미지  © 특허뉴스


유럽연합(EU) 최고법원이 온라인 저작권 분쟁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국가마다 저작권 보호기간이 다른 저작물을 인터넷에 공개하더라도, 저작권이 유효한 국가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최신 수준의 지역 차단(Geo-blocking) 조치를 적용했다면, 이용자가 VPN으로 이를 우회해 접근했더라도 온라인 공개자에게 곧바로 저작권 침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국경 없는 인터넷 환경에서 국가별로 다른 저작권 보호제도와 온라인 서비스 운영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과 디지털 아카이브, 교육기관, AI 학습데이터 제공 서비스 등 국제 온라인 서비스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CJEU)는 지난 7월 9일 안네 프랑크 일기 사건(C-788/24)에 대해 이 같은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안네 프랑크 일기'가 국제 저작권 분쟁으로 번지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전쟁 기록물 가운데 하나인 '안네 프랑크 일기'였다.

 

안네 프랑크의 원고는 EU 일부 회원국에서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종료돼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에 편입됐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자국 저작권법에 따라 일부 원고의 저작권이 2036년 12월 31일까지 보호되고 있다. 

 

안네 프랑크 관련 문화·교육 활동을 수행하는 안네 프랑크 재단(Anne Frank Stichting)은 저작권이 만료된 국가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원고를 무료 공개하면서, 저작권이 존속하는 국가에서는 지역 차단(Geo-blocking) 기술을 적용해 접근을 제한했다. 

 

그러나 저작권자인 안네 프랑크 기금(Anne Frank Fonds)은 VPN을 이용하면 지역 차단을 우회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온라인 공개 자체가 저작권 침해"라며 네덜란드 법원에 공개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다. 

 

쟁점은 'VPN 우회'였다

 

사건의 핵심은 단순했다.

 

온라인 공개자가 저작권이 유효한 국가를 기술적으로 차단했더라도, 이용자가 VPN을 이용해 이를 우회하면 온라인 공개자가 저작권 침해 책임을 져야 하는가였다.

 

네덜란드 1심과 항소심은 "재단이 합리적인 수준의 지역 차단 조치를 시행했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안네 프랑크 기금은 네덜란드 대법원에 상고했고, 네덜란드 대법원은 유럽연합 사법재판소(CJEU)에 선결적 판단을 요청했다. 

 

CJEU "최신 기술 수준의 지역 차단이면 충분"

 

CJEU는 이번 판결에서 중요한 법적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최신 기술 수준(State of the Art)에 부합하는 효과적인 지역 차단 조치를 적용했다면, VPN 등으로 우회가 가능하더라도 해당 조치는 법적으로 유효한 '효과적인 기술적 보호조치'로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기술적으로 모든 우회 가능성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온라인 공개자의 책임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중전달' 성립도 엄격하게 판단

 

이번 판결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공중에 대한 전달(Communication to the Public)'의 판단 기준이다.

 

CJEU는 저작권 침해가 성립하려면 저작물이 실제로 해당 공중에게 제공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저작권이 유효한 국가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효과적인 지역 차단을 실시했다면, 그 국가에서의 공중전달 행위는 원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는 지금까지 국제 저작권 분쟁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온라인 공개 책임 범위를 상당 부분 명확하게 정리한 판결로 평가된다.

 

VPN 서비스가 책임지는 것도 아니다

 

재판부는 VPN 제공자의 책임 여부도 함께 언급했다.

 

만약 특정 지역 차단 조치가 효과적인 기술적 보호조치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저작권 침해 책임은 VPN 제공업체가 아니라 저작물을 공개한 서비스 제공자에게 귀속된다고 판시했다. 

 

즉, 이번 판결은 VPN 사용 자체를 불법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온라인 공개자의 기술적 보호조치 수준을 중심으로 책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국가마다 다른 저작권 보호기간도 인정

 

CJEU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회원국에서는 해당 저작물을 온라인으로 자유롭게 공개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다만 저작권이 여전히 유효한 국가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개가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 적절한 지역 차단 조치가 함께 적용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국가별로 서로 다른 저작권 보호기간이 존재하는 EU의 현실을 고려한 균형적인 판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 운영에도 영향

 

이번 판결은 단순히 안네 프랑크 일기에만 적용되는 사건이 아니다.

 

국가별 저작권 보호기간 차이와 온라인 공개, 스트리밍 서비스, 디지털 아카이브, 전자도서관, 교육 플랫폼, AI 학습데이터 제공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법적 기준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글로벌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앞으로 콘텐츠 공개 과정에서 국가별 저작권 상태를 더욱 면밀히 검토하고, 최신 수준의 지역 차단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저작권 질서의 새로운 이정표

 

향후 네덜란드 대법원은 CJEU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해당 지역 차단 조치가 당시 기술 수준에서 충분히 효과적이었는지를 심리한 뒤 최종 저작권 침해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이번 판결은 인터넷의 국경 없는 특성과 국가별 저작권 보호제도의 충돌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유럽 최고법원의 첫 번째 명확한 기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최신 수준의 지역 차단을 성실히 적용했다면 VPN 우회 가능성만으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글로벌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와 국제 저작권 분쟁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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