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혼자 크지 않았다"... UNIST, 지방세포를 '암의 조력자'로 만드는 핵심 스위치 찾았다TRAP1 단백질이 암연관 지방세포 형성 주도... 억제하자 종양 최대 56% 감소, 항암제 효과 높이는 차세대 치료 전략 제시
암세포가 성장하는 진짜 비밀은 암세포 자체가 아니라 주변 환경에 있을지도 모른다. 국내 연구진이 정상 지방세포를 암의 성장과 생존을 돕는 '암의 조력자'로 바꾸는 핵심 단백질을 규명하고, 이를 차단하면 종양 크기를 크게 줄이고 기존 항암제의 효과까지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암세포뿐 아니라 암을 둘러싼 미세환경까지 함께 겨냥하는 차세대 항암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로 평가된다.
UNIST 생명과학과 강병헌 교수 연구팀과 국립암센터 공선영 교수 연구팀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인 TRAP1이 정상 지방세포를 암연관 지방세포(Cancer-Associated Adipocyte, CAA)로 변화시키는 핵심 조절인자임을 규명하고, 이를 억제하면 종양 성장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음을 동물실험을 통해 입증했다고 4일 밝혔다.
암세포를 키우는 또 다른 주인공, '암연관 지방세포'
최근 암 연구에서는 암세포뿐 아니라 종양 주변 환경(Tumor Microenvironment)이 암의 성장과 전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암세포 주변의 지방세포다.
정상 지방세포는 암세포와 가까워지면 '암연관 지방세포(CAA)'로 변하면서 염증성 물질과 다양한 분비 단백질을 방출해 암세포의 증식과 생존을 돕고, 항암제 내성까지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상 지방세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암연관 지방세포로 변하는지는 지금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TRAP1이 지방세포를 암의 조력자로 바꿨다
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인 TRAP1이 이 과정을 조절하는 핵심 스위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TRAP1은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을 유지해 정상 지방세포 내부에서 mTOR–PPARγ 신호전달 경로가 지속적으로 활성화되도록 만든다.
원래 세포 내 에너지가 부족하면 AMPK가 활성화돼 mTOR–PPARγ 경로를 억제하지만, TRAP1이 에너지 생산을 유지하면서 이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팀이 유방암 환자 31명의 조직을 분석한 결과, 종양 주변 지방조직의 TRAP1 발현량은 정상 지방조직보다 3.03배 높게 나타났다.
이는 TRAP1이 암 주변 지방세포를 암 친화적인 환경으로 변화시키는 핵심 인자임을 보여주는 결과다.
TRAP1 제거하자 종양 최대 56% 감소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쥐의 TRAP1을 제거한 뒤 종양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지방세포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감소하면서 암연관 지방세포로의 전환이 크게 억제됐다.
이에 따라 종양 무게는 대조군보다 최대 56% 감소했으며, 기존 유방암 항암제를 함께 투여했을 때는 항암 효과가 더욱 향상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어 TRAP1을 직접 억제하는 약물 후보도 검증했다.
주사제 후보물질 가미트리닙(Gamitrinib)과 항암제 시스플라틴을 함께 투여한 생쥐에서는 종양 무게가 76% 감소했다.
또한 경구용으로 개발 중인 SB-U015 역시 뚜렷한 독성 없이 시스플라틴과 파클리탁셀의 항암 효과를 높여 항암제 내성을 극복할 차세대 치료 후보물질로서 가능성을 입증했다.
암세포만이 아니라 '암이 사는 환경'도 치료한다
이번 연구는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기존 항암 전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양 주변 미세환경까지 동시에 제어하는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특히 TRAP1 억제를 통해 암세포의 성장 기반 자체를 약화시키면서 기존 항암제의 효율까지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병용치료 전략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 성과는 이미 UNIST 교원창업기업 스마틴바이오로 기술이전돼 후속 항암 신약 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공선영 국립암센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방암 주변 지방세포가 항암제 내성에 미치는 역할을 규명한 성과"라며 "유방암뿐 아니라 난소암, 췌장암, 전립선암처럼 지방조직과 가까운 다양한 암에서도 TRAP1 억제제의 임상 가능성을 검증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병헌 UNIST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암세포뿐 아니라 암을 둘러싼 정상 지방세포의 미토콘드리아까지 함께 조절하면 항암 효과를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라며 "암세포와 종양 미세환경을 동시에 표적으로 하는 차세대 항암 치료제 개발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UNIST 생명과학과 윤남구 박사와 김소연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Signal Transduction and Targeted Therapy(영향력지수 81.2)에 7월 28일 온라인 게재됐다.
논문명은 The pro-tumorigenic functions of cancer-associated adipocytes are dependent on the mitochondrial chaperone tumor necrosis factor receptor-associated protein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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