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저산소 등 스트레스에도 멈추지 않았다"... 국내 연구진, 줄기세포 ‘비상 단백질 공장’ 첫 규명

eIF4E 차단 시 CBC·eIF2A 대체 경로 가동... YAP 단백질 유지로 증식 지속, 재생의학·항암 치료 새 전기

이성용 기자 | 기사입력 2026/05/01 [17:27]

"굶주림·저산소 등 스트레스에도 멈추지 않았다"... 국내 연구진, 줄기세포 ‘비상 단백질 공장’ 첫 규명

eIF4E 차단 시 CBC·eIF2A 대체 경로 가동... YAP 단백질 유지로 증식 지속, 재생의학·항암 치료 새 전기

이성용 기자 | 입력 : 2026/05/01 [17:27]

▲ 인간 배아줄기세포에서 일어나는 스트레스 저항성 단백질 번역 메커니즘 / 통합 스트레스 반응에 의해 eIF4E에 결합된 mRNA의 번역이 억제된 상황에서, CBC(CBP20/80)에 결합된 mRNA는 대체 번역 개시 인자인 eIF2A를 이용해 YAP 단백질의 번역을 유도한다. 이를 통해 줄기세포는 스트레스 환경에서도 지속적인 분열과 증식을 유지할 수 있다.(그림 및 설명=포항공과대학교 장지원 부교수)  © 특허뉴스

 

영양 결핍과 산소 부족 같은 극한의 스트레스 환경은 대부분의 세포에 성장 정지 명령을 내린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단백질 생산을 줄이고 증식을 멈추는 것이 일반적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줄기세포는 달랐다. 조직 재생과 회복이라는 본질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줄기세포는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도 생존하고 분열을 이어가야 한다. 국내 공동 연구진이 그동안 생명과학계의 난제로 남아 있던 이 ‘줄기세포의 생존 비밀’을 풀어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줄기세포가 단백질 합성을 지속하는 ‘백업 시스템’을 세계 최초 수준으로 규명하면서 재생의학과 차세대 항암 치료 전략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시했다.

 

한국연구재단은 포항공과대학교 장지원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윤기 교수 공동 연구팀이 줄기세포가 스트레스 환경에서 기존 단백질 생산 체계가 멈출 경우 즉각 대체 번역 시스템을 가동해 증식을 지속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Science Advances) 4월 30일자에 게재됐다.

 

연구의 핵심은 세포 내 단백질 번역 방식의 ‘스위칭 메커니즘’이다. 일반적으로 세포는 eIF4E라는 번역 개시 인자를 중심으로 mRNA 정보를 읽고 단백질을 생산한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발생하면 이 주 경로는 차단된다. 기존 학계에서는 이 단계에서 대부분 세포 기능이 크게 위축된다고 보아왔다. 그러나 연구팀은 인간 배아줄기세포 분석을 통해 줄기세포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CBC(Cap-binding complex)와 eIF2A를 활용한 별도의 번역 개시 경로를 즉각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쉽게 말해 주 발전소가 멈추면 곧바로 비상 발전기가 작동하는 구조다. 이 백업 시스템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증식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연구팀은 특히 세포 증식과 장기 크기 조절의 핵심 신호 단백질인 YAP가 이 대체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생산된다는 점을 발견했다. YAP 단백질이 계속 공급되기 때문에 줄기세포는 극한 환경에서도 세포 분열을 멈추지 않는다.

 

이는 줄기세포가 왜 조직 손상이나 생리적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재생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결정적 단서다. 동시에 암세포 연구에서도 파급력이 크다. 암세포 역시 저산소·저영양 상태의 종양 미세환경 속에서 살아남아 증식한다. 따라서 줄기세포의 이 생존 메커니즘은 암세포가 활용하는 유사 전략을 추적하고 차단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재생의학 분야에서 줄기세포 활용 안정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줄기세포 기반 치료제 개발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체내 이식 후 열악한 환경에서도 세포 기능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만약 CBC-eIF2A 경로를 정밀 제어할 수 있다면 손상 조직 재생 효율을 높이고 세포 치료 성공률을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암세포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백업 번역 시스템을 사용한다면 이를 차단해 악성 증식을 억제하는 새로운 표적 항암제 개발도 가능해진다.

 

이번 연구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단백질 번역을 ‘고정된 과정’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전환되는 동적 시스템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세포는 단순히 유전정보를 기계적으로 읽는 존재가 아니라, 생존 환경 변화에 따라 정보 해석 방식 자체를 바꾸는 정교한 적응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는 분자생물학적 관점에서 세포 생존 전략 이해의 폭을 넓히며, 향후 줄기세포뿐 아니라 면역세포·신경세포·암세포 연구 전반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국가 전략 차원에서도 의미가 적지 않다. 글로벌 바이오 산업은 줄기세포 치료제, 조직 재생, 유전자 치료, 정밀 항암제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세포가 스트레스 속에서도 기능을 유지하는 근본 원리를 선점하는 것은 단순한 학술 성과를 넘어 미래 바이오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특히 한국 연구진이 세계적 수준의 번역 조절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기초과학 역량이 첨단 바이오 기술사업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지원 교수는 “세포가 상황에 따라 단백질 생산 방식을 전환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발견”이라며 “이 번역 경로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줄기세포 기반 재생의학뿐 아니라 암세포 성장 억제를 위한 혁신적 치료 전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연구는 줄기세포가 단순히 ‘강한 세포’가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생존 회로를 재설계하는 ‘적응형 세포’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세포가 살아남는 법을 이해하는 것은 곧 질병을 제어하는 법을 이해하는 일이다. 극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줄기세포의 비상 시스템은 재생의학의 미래이자, 암 정복 전략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논문명은 The nuclear cap-binding complex safeguards stress-resistant protein synthesis and proliferation of stem cell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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