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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기획③] 역사 속 발명이야기, 대한민국 최초의 신약, 활명수
특허뉴스 이성용 기자 기사입력  2018/04/05 [15:03]


 
 
▲      © 특허뉴스

 
 
활명수는 궁중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궁중비방과 양약의 장점을 토대로 1897년 개발한 대한민국 최초의 신약이며, 오늘날 까스활명수-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발매 초기였던 조선시대 말기, 약을 구하기 힘들어 사람들이 급체, 토사곽란 등으로 목숨을 잃던 시절에 활명수(活命水)라는 이름의 뜻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물’로 불리며 만병통치약으로 널리 알려졌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탄산의 첨가, 성분 보강 등 제품의 다양한 진화를 추구하며 한국 사람의 변화된 라이프 스타일에 적합한 처방으로 한결같이 사랑 받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물’ 활명수는 우리 민족을 살리기 위해 일제시대 국가의 독립을 위해 힘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시대, 비밀리에 서울 연통부(聯通府)를 현 동화약품 순화동 본사에 설치하고,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한 것이다. 이에 서울특별시에서는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현 본사 부지에 ‘연통부 기념비’를 설치했다.

1996년에는 한국기네스협회로부터 국내 최고(最古)의 제조회사, 최고(最古)의 제약 회사, 최초의 등록상표(부채표), 최초의 등록상품(활명수) 등 4개 부문에 걸쳐 기록을 인정하는 인증서를 받았다.

이렇듯 활명수의 탄생은 대한민국 제약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제조회사의 설립을 통해 고유의 브랜드로 판매되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산업화와 브랜드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활명수는 아선약, 육계, 정향 등의 11가지 생약성분으로 만들어져 과식, 소화불량, 체함 등에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으며 연 매출 400억 원,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며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소화제 No.1 브랜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재 활명수, 까스활명수-큐,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까스활 등의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      © 특허뉴스

 
 
'부채표=까스활명수' 상표로 등록 
 
'부채표=까스활명수'라는 공식이 상표로 인정됐다.

동화약품공업의 광고 문구인 '부채표가 없는 것은 까스활명수가 아닙니다'가 통째로 상표 등록이 된 것이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특허심판원은 동화약품이 특허청의 상표등록 거절 결정에 불복해 제기된 심판청구에서 원심을 취소하고 심사국에 환송시키면서 광고 문구 전체가 상표로 등록이 결정된 것이다.

앞서 동화약품은 '부채표가 없는 것은 까스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총 18글자의 문장을 한글 상표 등록 출원서를 2007년 특허청에 접수했으나 타인의 유사상품과 주의를 촉구하는 선전문구로 된 상표라는 이유로 지정상품에 사용하면 수요자가 누구의 업무와 관련된 상품을 표시하는 것인지 식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등록이 거절된 바 있다.

그러나 동화약품에서 이러한 특허청의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심판에서 특허심판원이 동화약품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결정을 취소한 것이다.

특허심판원은 심결문에서 "부채표와 까스활명수는 1960년대 이래 현재까지 독점적, 배타적으로 사용된 상표"라며 "일반 수요자가 출원상표에 대해 청구인의 업무와 관련된 상표를 표시하는 것을 쉽게 인식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특허심판원의 결정은 까스활명수와 동일한 소화기관용약제 등 10개로 향후 10년간 동화약품에 귀속된다.
 

기사입력: 2018/04/05 [15:03]  최종편집: ⓒ e-paten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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