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증강하는 도구’... "지식재산 시스템의 대전환 필요”KAIST 박성필 원장, ‘증강지능 시대 IP 시스템 혁신’ 기조발표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박성필 원장은 특허뉴스 창간20주년 기념 컨퍼런스 「AI x TECH x IP Summit 2025 : 기술패권과 산업혁신」 기조발표에서 AI 시대 지식재산(IP) 시스템이 근본적인 전환점에 서 있다고 진단하며, 인공지능을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닌 인간의 역량을 확장하는 ‘증강지능(Augmented Intelligence)’ 관점에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AI를 둘러싼 논의는 오랫동안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라는 두려움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기술’이라는 과도한 기대 사이를 오갔다”며, “이제는 AI를 인간의 판단과 창의성을 보완하고 증폭시키는 협력 도구로 이해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AI를 “디지털 끌(Digital Chisel)”에 비유하며, 조각가가 끌을 사용해 작품을 완성하듯 인간이 AI를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전환의 경제적 가치... AI·메타버스가 바꾸는 산업 구조
박 원장은 AI와 디지털 전환이 만들어낼 경제적 파급력도 수치로 제시했다. 글로벌 기관들의 전망에 따르면 메타버스가 창출할 경제적 가치는 약 5조 달러, AI 시장 규모는 2030년대 초반 1조 달러 이상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 막대한 가치가 자동으로 각 국가나 기업에 배분되는 것은 아니며, 누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성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 변수로 지목된 것이 바로 지식재산(IP)이다. 박 원장은 “디지털 전환의 성과를 실제 경제적 가치로 연결하는 마지막 고리가 IP”라며, AI·데이터·알고리즘·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보호하고 활용할 것인지가 기술패권 경쟁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AI가 흔드는 IP의 기본 전제... ‘인간 중심 법체계’의 도전
박 원장은 AI 확산이 지식재산 제도의 기본 전제 자체를 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존 특허법과 저작권법은 인간의 지적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제도이지만, AI가 발명과 창작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누가 발명자이고, 누가 저작자인가’라는 질문이 더 이상 단순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IP(Intellectual Property)에서 ‘Intellectual’은 본래 인간의 지적 활동을 의미해 왔다”며, “AI가 등장한 지금, 인간 중심으로 구축된 법체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방대한 디지털 산출물은 기존 IP 분류 체계로 포섭하기 어려운 영역을 빠르게 확장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발명자·저작자 논쟁의 국제적 흐름... ‘인간의 상당한 기여’가 기준
AI 발명자성과 저작자성에 대한 국제적 논의도 상세히 다뤄졌다. 박 원장은 DABUS 사건을 비롯한 글로벌 판례와 특허청·저작권청의 입장을 종합해, 현재 국제 사회의 공통된 기조는 “인간의 상당한 기여(Significant Human Contribution)가 있는 경우에만 권리를 인정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즉, AI 자체는 발명자나 저작자가 될 수 없으며,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발명의 착상(conception)이나 창작 과정에서 인간의 실질적 개입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AI를 공동발명자로 보는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물러나, AI를 실험장비나 소프트웨어와 같은 ‘도구’로 명확히 규정하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이 정비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저작권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AI가 생성한 이미지·음악·텍스트 자체는 보호 대상이 아니지만, 인간이 프롬프트 설계, 결과 선택·편집, 반복 수정 등 창작적 개입을 충분히 입증할 경우 그 기여 범위에 한해 저작권을 인정받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AI 시대, 특허의 기준도 바뀐다”... ‘증강된 통상의 기술자’ 논의
박 원장은 AI가 발명 과정에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특허 제도의 핵심 기준인 ‘진보성’ 판단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기존 특허법에서 진보성은 ‘통상의 기술자(PHOSITA)’를 기준으로 판단해 왔는데, AI가 선행기술 검색과 설계·조합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환경에서는 이 기준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AI를 활용하면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속도로 수많은 기술적 조합과 실험을 반복할 수 있다”며, ‘증강된 통상의 기술자(Augmented PHOSITA)’라는 개념이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진보성 기준을 높이거나 ▲보호 범위를 조정하거나 ▲보호 기간을 단축하는 등 특허 제도 전반의 재설계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약 개발·우주항공 설계... AI가 바꾸는 발명의 패러다임
발표에서는 AI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발명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도 사례로 제시됐다. 박 원장은 AI 기반 신약 개발을 예로 들며, 과거 수년이 걸리던 후보물질 탐색과 전임상 과정이 1~2년 내로 단축되는 사례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NASA의 제너레이티브 디자인(Generative Design) 사례를 통해, AI가 수천 번의 설계 반복을 통해 중량은 줄이면서 강도는 높인 최적 구조를 도출하는 등 인간이 단독으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설계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발명의 핵심 가치는 ‘실행’보다 ‘문제 정의와 설계’에 있다”고 강조했다.
격차를 줄이는 AI... 국가·기업·개인의 IP 경쟁력 재편
박 원장은 AI가 IP 생태계의 격차를 줄이는 도구로 작용할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과거에는 선진국과 후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IP 역량 격차가 컸지만, AI 기반 검색·분석·설계 도구가 확산되면서 후발 주자도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소득 국가들이 혁신 지수에서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배경에는 AI 기반 IP 활용이 있다”며, “AI는 글로벌 IP 경쟁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책임과 리스크의 확대... IP 전문가는 ‘리스크 관리자’로
AI 활용 확대에 따른 위험 요소도 함께 짚었다. 박 원장은 “AI가 증강지능이 될수록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며, 블랙박스 문제, 오류 발생 시 책임 소재, 설명 가능성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IP 전문가의 역할 역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IP 전문가는 단순히 문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아니라, AI 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기술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AI·메타버스 기반 ‘아시아 IP 생태계’ 구상
마지막으로 박 원장은 KAIST가 추진 중인 연구 방향도 소개했다. 그는 AI와 메타버스를 결합한 ‘아시아 IP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온라인 플랫폼 기반의 분쟁 해결(ODR), 특허 거래, 라이선싱, IP 금융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국가별로 분절된 법·제도는 혁신 비용을 높이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되고 있다”며, “기술을 활용해 각국의 IP 활동을 연결하는 생태계를 만든다면, 아시아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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