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디지털 유산’의 빈틈... PKI ‘인증 체인’이 여는 ‘선택적 상속’ 시대

이성용 기자 | 기사입력 2026/01/17 [19:25]

삼성·애플 ‘디지털 유산’의 빈틈... PKI ‘인증 체인’이 여는 ‘선택적 상속’ 시대

이성용 기자 | 입력 : 2026/01/17 [19:25]

▲ 출처=freepik  © 특허뉴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가 ‘제2의 인생 기록’이 된 시대, 죽음 이후 남겨지는 것은 유품만이 아니다. 연락처와 통화기록, 사진과 메시지, 일정과 메모, 나아가 가상자산과 메타버스 활동까지 개인의 삶은 디지털 데이터로 축적된다. 그러나 이 방대한 기록은 남겨진 가족에게 위로가 되기도,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유산이 더 이상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제도의 문제로 떠오른 이유다.

 

최운호 서강대 교수(메타이노베이션센터 센터장·MIO)는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속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유언이 던지는 질문을 꺼내 든다. 프란체스카는 단 4일간의 사랑을 평생 간직하다 사후 남긴 일기와 사진첩으로 자녀들에게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그 기록은 유족에게 상처가 아닌 이해의 매개가 됐다. 하지만 오늘날이라면 그 추억은 스마트폰 속 암호화 폴더나 클라우드 계정에 갇혀 영원히 열리지 않거나, 반대로 원치 않는 방식으로 한꺼번에 공개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삼성과 애플은 각각 ‘디지털 유산’ 기능을 도입했다. 애플의 ‘레거시 연락처’, 삼성의 ‘디지털 유산 서비스’는 고인의 일부 데이터를 유산 관리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최 교수는 이들 서비스가 결정적인 한계를 공유한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제조사 생태계에 갇힌 유산이다. 특정 브랜드의 기기와 계정 안에서만 관리가 가능해, 사용자가 기기를 바꾸거나 플랫폼을 이동하면 유산 설계의 연속성이 끊어진다. 둘째는 프라이버시의 사각지대다. 현재 서비스는 ‘전부를 주거나, 아무것도 주지 않는(All or Nothing)’ 구조에 가깝다. 유족이 금융 정보나 행정 자료를 찾기 위해 계정에 접근하는 순간, 고인의 사적인 기록까지 함께 노출될 수 있다. 실제로 사후 발견된 메시지·사진·위치 기록이 가족 관계를 흔들고 상속·위자료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디지털 기록은 추억이 아니라 분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러한 한계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대안으로 최 교수는 미국에서 등록된 PKI(Public Key Infrastructure) 기반 ‘인증 체인’ 특허 기술을 제시한다. 이 기술의 핵심은 ‘접근 권한을 통째로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선택적 상속(Selective Inheritance)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 출처=freepik  © 특허뉴스

 

인증 체인 기술은 다중 공개키(Multi-Public Key) 구조로 권한을 계층화한다. 본인용 마스터 키는 생전 모든 데이터에 접근하지만, 상속인용 제한 키는 사후에만 활성화되며 사전에 허락된 영역에만 접근하도록 설계된다. 예컨대 금융 정보와 가족 사진은 즉시 전달하되, 개인적인 기록은 특정 시점 이후에만 열리게 하거나 영원히 봉인하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죽음 이후의 이미지까지 스스로 설계하는 유언’이 기술로 구현되는 셈이다.

 

디지털 유산이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되는 이유는 데이터가 곧 법적 증거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판례에서도 사망자의 디지털 기록이 상간 소송 등에서 핵심 증거로 활용되며 거액의 책임을 인정받은 사례가 등장했다. 하지만 증거 확보 과정에서 고인의 프라이버시와 사후 명예가 무방비로 훼손되는 문제도 동시에 발생한다.

 

인증 체인 기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웨어러블 기기와 연동해 사망 직전의 생체 신호·위치 정보·시간 데이터를 위·변조가 어려운 형태로 구조화한다. 이는 법의학적 ‘디지털 검시 보고서’ 역할을 할 수 있고, 보험금·민사 분쟁에서 무결한 증거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망의 순간조차 무질서한 데이터가 아니라 법적 의미를 갖는 기록으로 남는 것이다.

 

미래의 유산은 현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메타버스 아바타, 가상 부동산, NFT, 가상자산(CBDC 포함)은 이미 또 하나의 삶이 됐다. 인증 체인 기술은 아바타·제스처·음성·웨어러블을 결합한 입체적 신원 인증을 통해 가상자산 승계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동시에 고인이 특정 플랫폼 활동 기록을 사후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설정하는 ‘활동 숨기기(Hide Activity)’ 기능은 디지털 시대의 ‘잊힐 권리’를 기술적으로 보장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최 교수는 디지털 유산 기술의 본질을 “효율”이 아니라 “존엄”이라고 강조한다. 유족이 복잡한 행정 절차와 소송에 매달리지 않도록 기술이 부담을 덜어주고, 고인이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품격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디지털 유산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삼성과 애플이 디지털 유산의 문을 열었다면, ‘인증 체인’은 그 문을 끝까지 열 수 있는 설계도다. 기술은 이제 묻고 있다. 당신의 마지막은 어떤 기록으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남길 것인가. 디지털 유산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결국, 죽음 이후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으로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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