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입증장벽 허문다...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 국회 통과로 본격 가동‘정보의 불균형’ 깨는 K-디스커버리… 기술탈취 입증 구조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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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탈취 분쟁에서 피해 중소기업을 옭아매던 ‘입증의 벽’이 제도적으로 무너졌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K-디스커버리)’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은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범부처 최초의 증거개시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입법은 지난해 9월 발표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의 후속 조치로, 기술탈취 사건에서 피해 기업이 사실상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웠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간 분쟁 현장에서는 가해 기업이 자료와 정보의 대부분을 보유한 반면, 피해 중소기업은 핵심 증거에 접근하지 못해 소송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기술탈취 피해 기업의 주요 애로사항으로는 증거수집 등 입증곤란(73%), 소송기간 장기화(60.8%), 소송비용 과다(59.5%)가 꼽혔다(2025년 지식재산처·벤처기업협회).
‘정보의 불균형’ 해소하는 3대 핵심 패키지
개정 상생협력법의 골자는 기술자료 유용행위 손해배상 소송에서 전문가 사실조사·법정 외 당사자 신문·자료보전 명령으로 구성된 3대 증거확보 패키지를 제도화한 것이다.
먼저,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당사자의 사무실이나 공장을 방문해 자료 열람과 현장 조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법원이 증거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기술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안에서 사실관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장치다.
둘째, 법정 외 당사자 신문을 허용해 녹음·영상녹화 등의 방식으로 확보한 진술을 증거로 제출할 수 있게 했다.
셋째, 법원이 자료 훼손이나 멸실을 막기 위해 필요한 자료의 보전을 명할 수 있도록 해, 분쟁 초기 단계에서 증거 인멸을 차단한다.
이와 함께 법원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사건의 실체를 신속히 파악할 수 있도록 중기부가 수행한 행정조사 자료의 제출을 명할 수 있는 ‘자료제출명령권’도 도입됐다. 수·위탁 거래 체결 이전에 발생한 기술자료 유용행위까지 보호 범위를 확대한 점도 주목된다.
기술 선진국 수준의 제도, 이제 한국에도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 기술 선진국은 이미 증거개시 제도를 운용하며 기술보호의 실효성을 높여 왔다. 반면 한국은 제도 부재로 인해 기술보호 수준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번 K-디스커버리 도입 논의는 제21대 국회부터 이어졌으며, 현 정부 출범 이후 국회와 관계부처의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 결실을 맺었다.
지식재산처는 논의 초기부터 업계와 100회 이상 소통하며 법안을 마련하는 등 실무적 쟁점을 반영했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은 “기술탈취는 공정한 경쟁 질서를 훼손할 뿐 아니라, 어렵게 기술을 개발한 중소혁신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심각한 문제"라며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 도입으로 이제 피해 기업이 혼자 모든 것을 입증해야 했던 구조에서 벗어나, 보다 실효적인 구제와 보호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식재산처는 향후 기술탈취 발생 시 행정조사·기술경찰 수사·분쟁조정을 연계해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사전 예방을 위한 기술보호 컨설팅 확대와 AI 기반 영업비밀 관리 지원도 병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상생협력법 개정에 이어 특허법에도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가 조속히 도입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렇다면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가 도입되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가 도입되면 먼저, 피해구제가 용이해 진다. 피해 중소기업의 증거확보가 용이해짐에 따라 권리구제 가능성 및 정당한 손해배상 확률이 높아지고, 둘째, 증거확보 강화에 따른 가해기업의 기술탈취 행위가 감소되는 예방효과도 발생하며 공정한 생태계 조성에 긍정적인 영향과 함께 기술탈취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소송의 신속성도 기대된다. 전문가에 의한 증거조사로 복잡한 기술쟁점 사안에 대해 사실확인이 가능하며, 분쟁의 실체를 조기에 파악하여 신속한 소송종결이 가능해진다. 또한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한 기술소송과 관련한 법원의 재판 부담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용선 지식재산처장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특허 등록"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부동산에 등기가 있어야 법적 권리가 성립하듯, 기술도 특허를 통해 권리를 확보해야 민·형사상 보호와 책임 추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한국형 증거개시 제도는 기술탈취 피해 중소기업이 증거 접근권을 확보하는 제도적 전환점”이라며 “중소기업의 땀과 노력으로 개발한 기술이 정당하게 대우받는 공정한 시장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K-디스커버리의 본격 가동으로 피해구제의 문턱은 낮아지고, 기술탈취에 대한 예방 효과는 높아질 전망이다. 기술혁신의 성과가 정당하게 보호받는 산업 생태계를 향해 제도적 시계가 한 단계 앞으로 움직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