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연재④] 한국 R&D는 왜 항상 1등에서 멈추는가우리는 기술을 ‘끝내는 데’ 익숙하고, ‘살리는 데’ 서툴다
우리는 자주 세계 1위를 한다. 국제 경진대회에서, 성능 비교에서, 논문과 시연 무대에서 한국의 기술은 반복해서 정상에 오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다음 장면은 늘 비슷하다. 세계 1위가 된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대신 과제 종료, 예산 중단, 조직 해체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한국 R&D는 왜 이렇게 자주 1등에서 멈출까.
이 질문은 기술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는 기술을 너무 잘 만든다. 문제는 기술을 대하는 정책의 시선에 있다. 한국의 R&D는 오랫동안 ‘이기는 것’을 목표로 설계돼 왔다. 목표를 달성하면 성공이고, 성공하면 사업은 끝난다. 기술은 결과물이고, 결과물이 나오면 다음 과제로 이동한다. 기술을 오래 쓰는 구조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세계 1위는 목표이자 종착점이 된다. 1등을 하면 성과가 입증됐다고 판단하고, 더 이상의 투자는 불필요한 중복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술사업화의 관점에서 보면 이 순간이 가장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이 실험실을 나와 시장으로 가는 길은, 대회나 연구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DARPA 대회 이후가 우리와 달랐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우승 여부를 성과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기술이 어디에 쓰일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대회는 끝났어도 예산은 남아 있고, 프로젝트는 해체돼도 기술은 흩어져 각자의 산업으로 들어간다. 반면 우리는 기술과 조직을 함께 묶어 관리한다. 조직이 끝나면 기술도 멈춘다.
이 구조에서는 IP 전략이 작동하기 어렵다. 특허는 연구 성과를 정리하는 도구로 쓰이고, 사업권을 설계하는 수단으로는 활용되지 않는다. 기술을 누가 이어받을지, 어떤 산업이 사용할지, 민간 기업이 어떤 권리를 가져갈 수 있는지는 과제 종료 보고서 어디에도 명확히 남지 않는다. 그 결과 세계 최고 기술은 국가의 성과로 기록될 뿐, 산업의 자산으로 이전되지 않는다.
DARPA 로봇대회에서 우승한 우리 로봇이 그랬다. 기술은 세계 최고였지만, 그 기술을 받아줄 시장과 기업은 준비되지 않았다. 정책은 기술 개발까지는 책임졌지만, 기술 이후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로봇은 산업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창고로 향했다. 세계 1위라는 성과가 오히려 기술의 시간을 멈추게 만든 셈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달랐다. 기술은 여러 번 주인을 바꿨고, 실패처럼 보이는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산업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차 인수의 의미는 로봇 기술의 성공이 아니라, R&D 이후 단계가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기술이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 되는 순간, 로봇은 살아남았다.
한국 R&D가 반복해서 1등에서 멈추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아직도 R&D를 ‘경쟁’으로 설계하고, ‘사용’으로 설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을 이기는 데는 능숙하지만, 기술을 쓰는 데는 서툴다. 그래서 세계 최고 성능의 기술이 가장 빨리 잊히는 역설이 반복된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세계 1위를 했는가”가 아니라, “이 기술은 10년 뒤 어디에서 쓰이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R&D의 평가는 성과 발표가 아니라, 기술의 생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이 산업에 남아 있지 못하다면, 그 기술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세계 1위에서 멈추는 나라와, 세계 1위를 출발점으로 삼는 나라의 차이는 크지 않다. 정책의 관점 하나, 평가 기준 하나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기술의 운명을 갈라놓는다. 더 이상 세계 1위를 창고에 보내는 R&D로는 미래를 말할 수 없다.
이 연재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다음 세계 1위 기술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또다시 박수를 치고 등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그 기술이 평생 머물 자리를 함께 만들 것인가.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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