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특허의 경고... 절반 ‘특허 무효화’의 덫, 대한민국 혁신 생태계 ‘위협’

코스피 5000시대 열어갈 핵심 키워드 ‘특허’… “질적 성장해야”
특허 강국의 민낯… 절반이 무효되는 ‘K-특허’의 역설

이성용 기자 | 기사입력 2025/06/18 [02:22]

K-특허의 경고... 절반 ‘특허 무효화’의 덫, 대한민국 혁신 생태계 ‘위협’

코스피 5000시대 열어갈 핵심 키워드 ‘특허’… “질적 성장해야”
특허 강국의 민낯… 절반이 무효되는 ‘K-특허’의 역설

이성용 기자 | 입력 : 2025/06/18 [02:22]

▲ 출처=chatgpt     ©특허뉴스


대한민국은 자타 공인 지식재산 강국이다. 매년 세계 4위권의 국제 특허 출원량을 자랑하며, 양적으로는 혁신을 선도하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외관 뒤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특허 무효심판이 청구될 경우, 인용률은 40~50%에 달한다. 이는 미국(25.3~31.3%)이나 일본(11.5~13.9%) 등 주요 선진국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로, 한국 특허의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 제공=chatgpt  © 특허뉴스

 

이 같은 높은 무효율은 단순한 통계를 넘어 기업 혁신의 기반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이어진다. 등록된 특허가 무효가 될 가능성이 크다면, 기업들은 R&D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특히 기술 기반의 창업을 통해 성장하는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스타트업은 무효화 가능성이 높은 특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술 탈취 위험에 노출되며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결국 ‘특허는 보호막’이라는 믿음이 무너지고, 특허 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하락하고 있다.

 

무효율 높이는 구조적 원인들… 부실 심사와 판단 기준의 불일치

 

한국 특허 무효율이 유독 높은 데는 제도적, 실무적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심사 품질의 문제다. 2023년 기준, 한국 특허 심사관 1인은 연간 평균 186건을 처리했다. 이는 유럽(63건), 미국(67건)보다 약 3배 많은 수치다. 심사관 1인이 맡는 기술 분야(IPC) 범위는 80개로 가장 넓으며, 건당 심사에 투입되는 평균 시간도 11시간으로, 유럽(34.5시간), 미국(29시간), 중국(22시간), 일본(16.7시간)보다 턱없이 짧다.

 

결국 이는 신규성, 진보성 등 특허 요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고, 이른바 '부실 특허' 양산으로 직결된다. 즉 무효화 가능성이 높은 특허가 등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등록된 특허는 이후 분쟁 시 더 정교하고 광범위한 선행기술 조사에서 취약점을 드러내며 무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 출처=freepik  © 특허뉴스

 

또한, 특허청 심사 → 특허심판원 심판 → 특허법원 및 대법원 재판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특허성 판단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진보성 판단은 해석의 여지가 커, 각 판단 주체(심사관, 심판관, 법관)마다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특허청 심사 단계에서는 제한된 시간과 예산으로 인해 선행기술 조사의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반면, 특허 분쟁이 발생하여 무효심판이 청구되면, 특허 무효를 주장하는 측은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여 전 세계의 모든 형태의 선행기술(문헌, 제품, 학술지 등)을 집중적으로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심사 단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결정적인 선행기술이 발굴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진다. 이로 인해 기업 입장에서는 등록된 특허조차도 언제든 무효화될 수 있다는 불안정성에 시달려야 한다.

 

분쟁 전략으로 전락한 무효심판… 침해소송보다 앞선 ‘무력화 선제타격’

 

무효심판은 단순한 제도적 절차를 넘어, 특허 분쟁의 핵심 전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허 침해를 주장하는 기업에 대해 피고 측은 통상적으로 해당 특허의 무효를 주장하며 ‘선제 타격’에 나선다. 실제로 침해소송 1심 판결보다 무효심판 결과가 먼저 나오는 비율은 약 74.1%에 달한다.

 

무효심판의 결과가 침해소송에 직접적인 기속력은 없지만, 실무적으로는 법원에서 이를 유력한 판단 근거로 삼는다. 피고가 무효심판에서 승소할 경우, 침해소송 자체가 무의미해지거나 특허권자는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전략은 기업 간 분쟁을 소모적으로 장기화시키고, 특히 자금력과 법률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 스타트업에게는 결정적인 타격이 된다.

 

▲ 출처=freepik  © 특허뉴스


실제로 한국 민사법원 1심에서의 특허권자 승소율은 20.3%로, 미국(70%), 중국(80% 이상), 독일(60%), 일본(38.2%)보다 현저히 낮다. 이는 한국에서 특허 분쟁 시 권리를 온전히 보호받기 어렵다는 인식을 낳으며, 특허 제도의 실효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혁신 생태계의 위기… 중소기업 무너뜨리는 특허 불신과 해법 모색

 

높은 무효율은 단지 법적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한국 혁신 생태계 전반을 위협하는 본질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중소·벤처기업은 특허의 법적 불안정성과 높은 무효 가능성으로 인해 기술 보호에 어려움을 겪고, 이에 따른 투자 유치 및 사업화 기회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결국, 특허 시스템이 본래 제공해야 할 '독점권 보장'과 '혁신 유인'이라는 핵심 기능이 약화되어, 기업들이 혁신 성과를 특허로 보호하기보다는 영업비밀 등 다른 형태로 보호하려는 유인을 높일 수 있다.

 

투자자나 글로벌 파트너는 법적 안정성이 낮은 특허를 기반으로 한 기업에 대한 신뢰를 보류하게 된다. 특허권이 무효화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기업 가치가 과소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 시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한국 특허의 국제적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지식재산 보호 수준은 64개국 중 28위(2023년 기준)에 머물렀으며, 이는 높은 특허 무효율과 부실 특허의 존재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 출처=freepik  © 특허뉴스


한국의 높은 특허 무효율은 특히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성장하는 중소기업, 벤처기업, 스타트업에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무엇일까? 

 

먼저, 특허 심사 품질 개선을 위해 심사관 증원과 심사 투입 시간 확대가 필요하다. ▲현재 과중한 심사관 1인당 업무량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하고 ▲심사관 수를 늘려 각 특허출원에 대한 심사 투입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선행기술 조사의 깊이와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부실 특허의 초기 등록을 방지하고, 특허권의 질을 근본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중국이 10년 전 2~3천 명에 불과했던 심사관을 1만 명 이상으로 증원한 사례는 심사 품질 향상을 위한 인력 확충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한편, 특허청은 2023년 7월, 심사 품질을 높이기 위해 세계 최초 초거대 AI 특허심사시스템 개발에 착수한 바 있다.

 

둘째, 단순히 심사관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심사 과정 자체의 질을 높이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심사 기간 단축 효과를 낳고 있는 3인 협의 심사가 적용되고 있지만, 고난이도 융복합 기술 분야에 대한 협의 심사를 더욱 확대하고, 선행기술 조사원 및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활성화하여 심사의 전문성과 정확성,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사 처리 기간 중심의 평가에서 심사 품질 중심의 평가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심사관들이 양적 목표보다는 질적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명품특허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심사 품질 강화는 특허권의 유효성을 등록 단계에서부터 엄격하게 검증하여, 이후 무효심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부실 특허를 사전에 걸러낼 수 있다.

 

셋째, 심사 기준의 일관성 강화도 시급하다. 특허청, 특허심판원, 특허법원 및 대법원 간에 특허성, 특히 진보성 판단 기준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와 협력을 통해 일관된 해석을 도출해야 한다. 공동 연구, 정기적인 실무자 회의, 판례 분석 공유 등을 통해 각 기관의 판단 기준 간극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는 특허권자들이 등록 단계에서부터 자신의 특허가 향후 분쟁 시에도 유효하게 유지될 것인지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하여, 불필요한 무효심판 청구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지식재산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법관의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과학기술 배경을 가진 법관의 충원, 지식재산 전문 법관 제도의 도입 및 확대, 그리고 국제재판부 확대 운영과 같은 전문성 강화 노력을 통해 복잡한 기술적, 법리적 쟁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다섯째, 특허심판 절차 내에서 '무효심결 예고제'를 활성화하여 특허권자에게 무효심결 전에 정정 청구 기회를 부여해, 보정을 통해 유효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과 '심판-조정 연계제'를 활성화하여 특허 분쟁 당사자 간의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고, 소송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 부담을 줄이는 방법도 해법으로 제시된다. 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하여 분쟁을 신속하게 종결할 수 있다.

 

여섯째, 특허 침해 손해배상액 현실화 및 증거수집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2024년 2월 특허법 개정을 통해 손해배상액이 최대 5배까지 증액될 수 있도록 강화되었으나, 법원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특허 침해 소송에서 특허권자가 침해 사실 및 손해액을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형 증거 수집 제도 도입 등 실효성 있는 증거 확보 방안 등 높은 무효화 인용률에 따른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식재산 법률 지원 확대, 공공 R&D 성과의 고품질 특허화, 무효심판 남용 방지를 위한 법제도 보완 등 전방위적 개선도 요구된다.

 

▲ 출처=freepik  © 특허뉴스


한국의 40~50%에 달하는 높은 특허 무효심판 인용률은 양적 성장에 치우쳐 온 특허 시스템의 질적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는 지표이다. 이는 혁신을 주도해야 할 중소기업, 벤처기업, 스타트업에게 특히 가혹한 현실로 다가오며, 기술 탈취의 위험, 막대한 소송 부담, 그리고 투자 유치 및 사업화 기회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양적 확대를 넘어서 ‘명품 특허’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허 제도가 다시 혁신을 지키는 제도로 거듭나야만, 한국은 코스피 5000 시대를 실현할 수 있는 ‘질적 성장’ 기반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출처=freepik  © 특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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