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판권”(版権)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출판계가 그러하고, 영화계에서도 그렇다. 경제적 이해관계, 나아가 자신의 인격적 이익이 관련되는 특정의 관계에서도 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해관계가 법률관계로 진행될 때에도 판권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은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문제가 되는 근본적 이유는 판권의 법률적 의미가 매우 모호하다는 점에 있다.
판권의 의미와 관련하여 우선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뜻풀이를 살펴본다. 국어사전적 의미에서는 판권을 “1. ‘출판권’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또는 “2. 책의 맨 끝 장에 인쇄 및 발행 날짜, 저작자ㆍ발행자의 주소와 성명 따위를 인쇄하고 인지를 붙인 종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먼저 “2.”의 경우는 이른바, “판권란” 또는 “저작권표시란”으로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것이기에 논란이 거의 없다.
문제는 위의 “1.”의 경우다. 여기에는 크게 2가지가 문제 된다. 첫째, “출판권”이 갖는 다의적 의미와 관련되는 것으로 이를 어떻게 새길 것인지의 문제다. 출판권은 일단 “출판할 권리”라고 할 수 있으나, 이를 권리의 성격에 비추어 구체적으로 살피면 출판을 위한 복제ㆍ배포권, 설정출판권, 독점적 출판허락권, 단순 출판허락권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각각의 권리 성격이나 효과 등은 각기 다르다.
둘째, 판권이 과연 출판권만을 의미하는 것인지와 관련되는 문제다. 어느 정도 전문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용어사전을 보면 “저작권을 가진 사람과 계약하여 그 저작물의 이용, 복제, 판매 등에 따른 이익을 독점할 권리. 저작권 또는 저작물 사용 권리를 의미하는 용어...”라는 것이 판권의 의미로 등재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판권은 출판 영역을 뛰어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
이처럼 판권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것은 성문법에 정의되어 있지 않다거나 법원의 명확한 판단의 부재가 큰 원인의 하나이겠으나, 그 유래에서 비롯된 사회적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판권이란 명칭이 처음 등장된 것은 일본의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 1835-1901)가 1873년(明治 6年)에 copyright의 번역(“출판의 특권” 또는 약칭하여 “판권”)어로 사용하였던 것에서 기원한다. 이 용어는 1875년부터 일본의 저작권법에서 공식적인 법률용어로 사용되었다.
당시 일본의 저작권법은 오늘날의 무방식주의와 다른 방식주의를 채택하여 등록과 함께 “판권소유”의 표시를 보호 요건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판권이란 말은 일반에게도 널리 통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899년(明治 32年) 당시의 일본 저작권법 입안자인 미즈노 렌타로(水野鍊太郎. 당시 내무성 참사관, 후에 내무상ㆍ문부상)는 판권이라는 명칭이 단순히 출판할 권리로만 협소하게 해석될 우려가 있으므로 모든 저작물을 포괄할 수 있는 저작권(Droit d'auteur. “저작자의 권리”)이란 용어를 창안하여 법률에 규정하였다.
따라서 일본의 법률상으로 1899년 이후 당시의 저작권법 시행과 함께 판권이란 용어는 사어(死語)가 되었다. 그러나 그 후는 물론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방식주의 시대의 영향이 실무계 일부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판권을 출판권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등의 현실이 이를 나타내는바, 이 영향은 그대로 일제강점기를 거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이라도 일제강점기의 영향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당위이다. 더욱이 문화 콘텐츠 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저작권 거래에서 “오징어 게임의 판권”, “우영우 판권 소유” 등이라는 말이 회자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판권 아닌 저작권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사용한다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을 불식시키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문화콘텐츠 거래의 위험도를 줄이고 또한 거래의 신속과 안전을 도모한다. 관련 분쟁의 사전예방을 이루면서도 콘텐츠의 원활한 전전유통을 통하여 문화발전의 추동력을 확보하는 것도 그에서 비롯된다.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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