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원전, 웨스팅하우스의 특허권 분쟁 속 타결에 '탄력'... 이유는?

이성용 기자 | 기사입력 2024/11/04 [22:45]

체코 원전, 웨스팅하우스의 특허권 분쟁 속 타결에 '탄력'... 이유는?

이성용 기자 | 입력 : 2024/11/04 [22:45]

▲ 출처=chatgpt  © 특허뉴스


지난 7월, 한국의 원자력 산업을 대표하는 ‘팀 코리아’가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약 24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팀 코리아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필두로 한전기술, 한국원자력연료, 한전KPS,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 주요 기업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체코 원전 건설 프로젝트에서 프랑스전력공사(EDF)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결국 한국은 뛰어난 원전 기술력과 경쟁력 있는 단가를 인정받아 최종적으로 체코 정부의 선택을 받았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 성공은 2009년 한국이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을 수주한 이후 두 번째로 거둔 대규모 원전 수출 성과로, 한국 원자력 기술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세계에 입증한 사건이다. 한수원과 체코전력공사(CEZ)의 최종 계약 체결이 내년 3월로 예정된 가운데, 이번 성과는 국내 원자력 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 한국은 체코가 신규 원전 건설을 계획할 때부터 장기적인 외교적 노력을 펼쳐왔다. 지역 봉사활동과 문화교류, 심지어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체코 아이스하키팀을 응원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체코와의 관계를 공고히 다졌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 걸림돌이 된 사건이 있었다. 미국의 세계적인 원자력 기업인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 컴퍼니(이하 웨스팅하우스)가 팀 코리아가 체코 원전 수주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특허권 침해를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경영 악화로 파산 후 캐나다 사모펀드 브룩필드와 우라늄 기업 카메코에 인수되었으며, 그 이후로도 원자력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통해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분쟁의 핵심은 한수원의 ‘APR1400 원자로’가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무단 사용했다는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이다.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이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원자로이기 때문에, 이를 무단 활용한 한국은 원전 수주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한수원은 APR1400이 기존 기술을 개량해 독자적으로 개발된 한국형 원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웨스팅하우스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한수원 사장 등 관련자들이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정부를 방문해 논의를 진행했고, 현재까지 긴밀한 협의가 이어지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의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한국 원전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원자력 발전은 사실상 미국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1969년 한국의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웨스팅하우스가 지었기 때문이다. 이후 웨스팅하우스는 지속적으로 한국 원전 사업에 참여하며 관련 기술을 전수했고, 이를 토대로 한국은 원전을 운영하며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오히려 한국이 전수받은 기술을 독자적으로 사용해 자사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

 

웨스팅하우스는 2022년 10월, 한수원이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체코 원전 수출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의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미국 법원은 원전 수출 통제 권한이 미국 에너지부에 있다고 판단하며 소송을 각하했다. 이에 웨스팅하우스는 즉각 항소했고, 그 사이 한국이 체코 원전 수주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미국 에너지부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1995년 우리나라가 회원국으로 참여한 원자력 공급국 그룹(NSSG) 지침에 따르면, 미국의 원전 기술을 기반으로 한 원전은 미국 에너지부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한수원은 체코 원전 수출 의사를 미국 에너지부에 신고했으나, 에너지부는 이를 반려했다. 이는 사실상 한수원의 기술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 상황은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주와 매우 유사하다. 당시 웨스팅하우스는 역시 한국이 자사 기술을 무단 사용했다고 주장했고,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일부 핵심 기술을 웨스팅하우스로부터 제공받는 조건으로 수출 허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체코 원전 사업에서는 당시와 달리 APR1400 원자로의 대부분 기술을 국산화했기 때문에, 한수원은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체코 측의 입장도 주목된다. 최근 한-체코 정상회담에서 체코 파벨 대통령은 "최종 계약서가 체결되기 전에는 확실한 것은 없다"며 미국 측 입장을 고려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는 이번 원전 수주에서 지식재산권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체코 반독점 당국(UOHS)은 최근 프랑스 전력공사(EDF)와 웨스팅하우스가 제기한 이의제기를 기각하며, 한수원과 체코전력공사 간의 최종 계약 협상에 탄력을 더했다. UOHS는 두 회사의 입찰 절차가 대부분 중단되었으며, 입찰 절차 위반 주장과 보조금 규정 위반 주장 또한 기각했다.

 

체코 반독점 당국의 결정은 ‘팀 코리아’의 체코 원전 프로젝트 계약 체결 가능성을 더욱 높이며, 한국 원자력 기술의 독자적 성과를 세계에 각인시킬 기회를 마련했다. 다만 이번 사례는 한국 원전 산업이 독자적인 기술력을 한층 더 고도화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해외 시장에서 지식재산권 분쟁이 계속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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